2009년 1월 14일 수요일

전직 신문기자로서 정리해보는 한국신문의 여론조작법2

글쓴이: 케네디언(연구소) 09.01.13 13:48 
http://cafe.daum.net/kseriforum/91pl/158 에서 퍼옴

1편을 쓰고 난 뒤 이 글을 쓰는데 너무 오래 걸렸네요. 일에 쫓기다 보니 쉽지 않네요.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부정기적으로 연재하겠다고 말씀드렸다는 점을 상기시켜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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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가장 효과적인 검열장치가 될 수 있다. (The "market" can be a most effective censor.)”
 
미국의 저명한 언론학자인 로버트 맥체즈니 교수의 책 ‘The Problem of the Media' 225쪽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광고주로서 기업의 힘이 얼마나 막강하고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장 대신 자본이라고 표현하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만.) 위 문장에서 맥체즈니 교수는 일리노이 대학(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의 미디어 정치경제학 전공 교수로 상아탑에만 머무르지 않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통해 미디어 정책을 비판하는 한편 직접 일리노이주의 지역 시사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신문방송의 교차 소유를 확대하려는 2003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조치에 대한 대중적 반란을 주도한 단체인 ‘Free Press’의 창립자이자 회장입니다.
 
그는 탈규제를 통해 생겨난 거대 독과점 미디어그룹들이 ‘국민에 앞서서 이익(Profit over People)'을 챙기기 위해 사회적 의제를 제한하고, 사실을 조작하며 본질을 왜곡해 민주주의의 기본적 토대인 언론 자유를 극도로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같은 독과점 미디어그룹은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미 연방정부가 미디어자본의 압력 아래 미디어그룹들이 최대한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독과점 구조를 만들어준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같은 독과점 구조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미디어들은 미디어정책에 대한 논의를 독점하고 소수 정치가와 기득권 위주의 미디어 방송을 실현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특히, 그는 9.11테러와 이어진 미국의 침략전쟁에 관한 미국 미디어의 보도 태도는 한 마디로 '정치적 선전선동(propaganda)'에 불과했다고 힐난할 정도입니다.
 
글의 첫 머리에 그의 활동과 주장을 소개한 이유는 그가 비판하는 상황이 한국의 미디어 상황을 이해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물론 그가 비판하는 미국 사회의 미디어 현실은 주로 방송을 장악한 거대 미디어그룹들에 관한 것이고, 제가 볼 때 미국사회의 언론 자유와 보도의 품질, 그리고 시청자와 독자들의 선택권 및 다양성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상태인데도 말입니다. 저는 그가 비판하는 내용을 한국의 경우 신문들, 특히 기득권 신문들에서 훨씬 더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신문들은 광고주의 압력을 매우 심각하게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난 번 글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왜 그런지를 신문사의 수익 구조와 연관해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구독료 수입이나 각종 부대사업과 광고수입이 거의 반반씩 균형을 이루고 있는 ‘뉴욕타임스’ 등 선진국 신문과 달리 국내 신문은 수입의 거의 대부분을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각종 경품 등을 통해 구독자를 유치하는 관행에 젖어 있는 국내 신문들의 경우 구독료 수입은 거의 그대로 신문지국 지원 및 ‘확장 비용’ 등으로 나가므로 사실상 100%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천적으로 신문사 경영이 광고주의 압력에 심각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렇게 광고수입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각 신문들, 특히 기득권 메이저 신문들은 서울 강남의 부동산 부자들을 중심으로 소위 ‘구매력 있는 독자층’을 확보하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구매력 있는 독자들이 신문을 봐야 기업이 비싼 단가의 광고를 싣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문사에 있으면서 이 같은 주문들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습니다. ‘강남 독자층을 공략해야 하니, 구매력 있는 독자들이 관심 가질 만한 기사를 발굴하라’는 지시는 매우 점잖은 주문입니다. ‘잘 사는 사람들이 아침 밥상머리에서 지체장애인 이야기는 보고 싶어하지 않으니 빼’ ‘외국계 명품 브랜드 광고 유치하기 위해 고급 패션과 외국계 화장품 기사를쓰라’는 식의 주문이 계속 이어집니다. 나중에는 정말 이런 주문들이 무감각해지는 수준까지, 그래서 기자들이 스스로 ‘자기검열’과 ‘동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그런 기사들을 생산하게 되는 수준까지 가게 됩니다. 재산세 문제나 종부세 문제를 과장하거나 왜곡하고, 정부의 투기 억제대책을 ‘강남 때려잡기’라고 비판하는 것도 소위 구매력 있는 독자층에 영합하는 방향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결국 기득권 지향적 보도--->구매력 있는 독자층 확보--->고가 기업광고 유치--->기득권 지향적 보도로 이어지는 왜곡된 순환구조가 국내 기득권 신문들의 보도태도를 오도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같은 신문들의 보도태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방송과 인터넷 뉴스포털, 무가지 등 경쟁매체들이 상승세를 타는 반면, 이들 신문들의 구독률과 열독률은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광고유치에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문제점이 신문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슈가 부동산 문제입니다. 신문들의 영업 이익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부동산 광고는 신문사 경영 측면에서는 구세주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동산 광고는 부동산 붐이 일기 시작한 2001년 이후 학습지 광고, 유통(백화점) 광고 등을 제치고 신문 광고 매출 기여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메이저신문에서 부동산 광고의 매출 기여도는 더 높습니다. 메이저신문사들의 경우 지난 6~7년 동안 부동산 광고가 신문사 광고 매출의 35% 전후를 차지해 사실상 부동산 광고가 신문사들을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아파트 분양 정보나 가격대 등의 정보는 고지성이나 시의성 측면에서 신문이 가장 적절한 매체로 평가받습니다. 이 때문에 각 신문사들은 부동산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여름 휴가철 등 비수기를 빼고는 매월 부동산 광고 특집면을 별도로 제작할 정도였습니다. 부동산광고가 신문 광고매출의 3분의 1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은 신문들이 부동산 투기 붐에 편승할 수밖에 없는 강한 유인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반시장, 반소비자적인 제도로 꼽히는 선분양제 대신 후분양제를 신문들이 달가워할 수 없는 사정도 부동산 광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이저 신문사의 한 광고국 직원은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건설업체 스스로의 자금력으로 70%이상 시공한 뒤 광고를 할 수 있게 돼 있어 광고 물량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신문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도입을 막고 싶은 제도가 후분양제”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한 전직 건설업체 직원의 증언을 통해서도 언론과 건설업체와의 유착구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합니다.
 
“부동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올라갈수록 건설업체는 분양가를 높인다. 부동산 값이 뛸수록 분양가를 높이는데도 유리하니 부동산 값을 띄우기 위한 여론 조작도 한다. 고도의 전략인데 업체가 땅을 산 지역에 대해 ‘유망개발정보’ 등의 형식으로 언론, 특히 신문에서 보도되게 한다. 건교부의 중장기 전략을 분석하는 자료를 내고 화성 동탄과 행정수도 부지 등이 터지면 얼마나 오르고 식의 정보를 계속 제공하는 거다. 이렇게 언론과의 유착관계를 만든다. 홍보팀에서 출입기자들을 만나 접대하면서 애로 있다, 도와달라고 호소하거나, 현금을 쥐어주면서 어떤 기사 나갈 때 우리 회사 부각시켜달라 이런 식으로 부탁도 한다. 물론 부탁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접대가 통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특히 대형업체들은 홍보팀을 통해 관련 기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분양가를 산정할 때 광고비를 간접비의 1~2% 정도로 산정한다. 광고비는 써도 되고 안 써도 된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반드시 광고를 내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안 해도 분양되는데 웬만하면 전면광고한다. 분양 끝난 뒤에도 사례광고를 한다. 메이저 신문은 기본이고 경제신문에도 대부분 광고한다. 언론에는 괜히 밉보이면 안 되니 광고하는 거다. 공사 프로젝트 관련해서 주위 민원도 있고 산업재해도 발생하고 회사 비리도 드러날 수 있으니 급할 때를 대비해 광고를 통해 언론사와 미리 유착 관계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광고 유치뿐만 아니라 언론사의 주택 및 부동산 개발사업 참여, 그리고 다량의 부동산을 보유한 언론사 사주들의 이해관계도 객관적인 보도를 힘들게 하는 요인입니다. 세계일보, 한국일보, 심지어 언필칭 진보언론이라는 경향신문까지 현재 상당수 언론사들이 직접 주택 개발 사업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들 경우에는 “조선일보가 정말 떼돈 버는 방법은 방송 참여가 아니라 코리아나 호텔과 주변 조선일보 건물들을 한데 묶어 용도를 변경한 뒤 거대한 주상복합단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 뿐인가요? 상암DMC의 첨담 업무 용지의 경우 땅값에서만 몇 배의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각 언론사의 치열한 로비전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그 업무용지를 분양받기 전 상암DMC사업과 그 사업을 벌이는 서울시를 거의 ‘찬양’하는 수준의 기사를 잇따라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의 과정을 거쳐서 족벌 언론사들은 대부분 상암DMC의 노른자위 땅을 분양받았습니다. 왜 청계천 사업으로 자사 사옥의 부동산 가치가 껑충 뛴 일부 신문들이 대선 전 ‘청계천찬가’와 ‘이명박 찬가’를 그토록 열심히 불러댔는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 이처럼 강한 이해관계를 가진 언론사들이 객관적으로 보도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족벌 언론사들의 사주들은 모두 엄청난 ‘부동산 재벌’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 종부세가 오르면 언론사주들의 부담은 매우 커집니다. 이들 언론사주들이 보유한 부동산 가액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납니다. 일일이 소개하기는 어려우나 그 일단이 김대중 정부 시절 언론사 세무조사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부 초년병 시절 수도권을 담당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지방 주재 선배가 사주집안의 부동산과 관련된 민원들을 처리하느라 많은 시간을 뺏기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소위 기득권 신문들의 종부세 비판 기사들은 고가 부동산 소유주인 구매력 있는 독자층에 영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지금은 미분양과 미입주 물량이 엄청나게 쌓이고 있지만, 언론사들은 몇 년전까지 ‘공급 부족론’이라는 건설업체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며 건설물량 확대를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했습니다. 또 집값 거품을 더 커지기 전에 꺼뜨려야 할 시기에도 정부에 끊임없이 각종 주택 사업 및 은행 대출 관련 규제완화를 주장해 집값 거품을 키우는 데 일조해왔습니다. 집값 하락세가 완연해지고 있는 2008년 상반기 이후에도 이런 식의 보도는 약간의 변화를 거쳐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집값 거품이 붕괴하면 서민들이 더 큰 피해를 본다”는 이유로 사실상의 집값 부양을 요구한다거나 집값 하락 소식을 전하면서도 집값의 급격한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식입니다. 또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주택 공급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장 반응임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가면 2~3년 후 공급이 줄어 집값이 폭등한다”며 정부가 나서서라도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같은 주장이 공급 과잉 해소를 지연시켜 오히려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장기화하고 결국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모르고 발 등의 불 끄기에 급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들 기득권 언론들은 건설업체들을 살려야 한국경제가 산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절대 건설업체들이 살아야 (광고수입이 늘어나) 자신들이 산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많은 신문들은 줄기차게 ‘집을 사라’고 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오르면 오르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집을 사라는 식으로 유도하는 기사를 자주 냅니다. 물론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들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으므로, 이들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증폭시키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공생관계가 형성돼 있는 셈입니다. 또 광고주인 건설사들을 위해 ‘잘 고르면 알짜배기’라는 식의 미분양 물량 해소에 도움 되는 기사를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직 쓸 말은 많지만 글이 길어지니 이 정도에서 줄일까 합니다. 이번 주제는 다음 글에서 제 개인적인 경험들을 중심으로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이번 글을 마무리하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한국의 언론들, 특히 일부 기득권 신문들은 절대 사회적 공기(公器)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고비마다 일반 국민들의 이익을 철저히 희생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측면이 너무 강합니다. 앞서 소개한 맥체즈니 교수 등 세 명의 미디어학자가 편집한 ‘The Future of Media'라는 책의 서문을 쓴 저명한 언론인 빌 모이어스의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까 합니다. 번역은 제가 한 것입니다. “특수 이익집단이 법을 무시하고 일반대중들의 복지를 훼손하면 사회적으로 부채가 생겨난다. 그런데 그 부채는 우리 모두가 지불해야 하는 부채다. 그리고 그 부채의 총합은 바로 우리의 시민권적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중략) 이런 거대 미디어 기업집단들(conglomerates)이 우리가 보고, 읽고, 듣는 것에 대한 통제력을 확대하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거대 사업체로서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정치적 과정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포함해서-을 증대하기 위해 매체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좀처럼 보도하지 않는다. (중략) 상업적인 표현(commercial speech)만이 유일하게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려서는 안 된다”

2009년 1월 13일 화요일

전직 신문기자로서 정리해보는 한국신문의 여론조작법1

신문기사가 아님. 개인의 의견.

글쓴이: 케네디언(연구소) 08.12.23 10:15

http://cafe.daum.net/kseriforum 언론개혁 부분에 연재

다들 아시겠지만, 저는 전직 신문기자였습니다. 그것도 소위 말하는 '족벌언론'의 기자였습니다. 더구나 그 신문에 소속돼 있을 당시뿐만 아니라 신문사에서 나와서도 여러 직간접적인 경험들을 통해 족벌 신문사들의 추악한 면들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그 신문들이 가진 언론으로서의 문제점과 그 신문들이 왜곡보도를 일삼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조적이고 지속적으로 왜곡 보도와 여론 조작을 일삼는 한국 언론, 특히 기득권신문들의 보도 태도와 이 같은 보도가 일어나는 구조적 배경에 대해 한 번 정리해보고 싶은 욕구가 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욕구만 있을 뿐 늘 시간에 쫓기다 보니 쉽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면 영원히 그런 작업을 못하고 말겠다 싶어 지난 주말에 작심하고 펜을 들어봤습니다. 이렇게 틈나는 대로 정리한 글을 부담 갖지 않고 그때그때 '언론개혁'란에 연재해볼 생각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대략 5~6회 정도 연재하면 대충 큰 골격은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좀더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겠습니다. 연재 주기도 일정하지 않을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첫 회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와 80년대 이후 신문산업 환경을 훑어보는 것으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처음에는 약간 싱겁고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해해주세요. 처음부터 힘 잔뜩 들어가면 저도 글 쓰기가 어려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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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4일. 사랑스러운 아들 ‘꿀꿀이’가 태어났습니다. 몇 주 후 ‘재헌’이라는 이름으로 출생 신고된 ‘꿀꿀이’. 아이 출생 때처럼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요?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한나라당을 출입하던 때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일찍 귀가해 아이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보는 게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커갈수록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습니다.

당시에는 언론사 세무조사로 시작된 소위 ‘조중동’과 정권의 ‘언론전쟁’이 격렬한 굉음을 내던 때였습니다. ‘언론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저는 동아일보의 지면 위에서 전사해야 하는 최전방 소총수나 다름 없었습니다. 총 대신 펜대를 잡았다는 것만 다를 뿐. 조중동이 야당인 한나라당을 우군으로 삼은 때문이었습니다. 괴로웠고, 혼란스러웠습니다. 포연의 한가운데 서있으니 사위를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진실과 허위가 아니라 적과 아군만을 구분해야 하는 상황. 객관과 공정, 진실이라는 저널리스트의 소명을 다하고 싶다는 갈망과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주는 좌절감. 그러면서도 저는 서서히 타협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의 방침에 따라 조직원 논리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정권을 향한 펜대가 날카로워졌습니다. 펜을 움켜진 손에 힘이 들어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가슴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이게 아닌데…’하는 외침이 솟구쳤습니다.

그때 제 첫째 아이가 태어난 것입니다. 아이의 맑은 눈망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상상했습니다. 이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문자를 해독하게 될 때를 말입니다. 그때 이 아이는 아빠가 쓴 기사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 기사들을 썼던 아빠를 어떤 인물로 평가하게 될까? 자신이 없었습니다. 떳떳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마음속에서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와의 결별을 마음먹고도 떠나는 데는 1년여가 더 걸렸습니다. 속사정을 모르는 많은 이들이 “왜 그 좋은 직장을 그만뒀느냐”고 했습니다. 제 스스로도 한때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회사를 퇴직한 뒤 뜻대로 되지 않고 생활고에 시달릴 때입니다. 매일 보게 되는 신문 지면만이 내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었을 따름입니다. 신문사 울타리 밖에서 내부 메커니즘을 아는 신문기자의 감각을 갖고 일반 독자의 눈으로 보니 한국 신문들의 문제가 훨씬 더 잘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보이는 그 문제점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잘 안 보인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매일 속고 삽니다. 한국의 신문 보도에 말입니다. 여기에서 속인다는 말은 왜곡보도, 편파보도, 일면 보도, 중요한 사실에 대한 침묵, 사태의 핵심 호도, 부정확한 보도 등을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사태를 단순화하는 위험이 있는데도 ‘속인다’는 강한 표현을 쓴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의 신문들이 고의적으로, 또는 최소한 문제점이 있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 같은 보도상의 문제들을 재생산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정론직필’ ‘불편부당’으로 위장하니 위선적이기까지 하지요.

제가 언론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같은 문제점을 이야기하면 많은 이들이 ‘설마’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한국 신문의 문제에 대한 일반 독자들의 이해 정도는 편차가 있습니다만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신문의 왜곡보도는 드물고, 설사 있다 해도 실수나 우연에 의한 것일 뿐이다 2)정치적 편향이 있다는 건 알지만 사회, 경제적 사안에 대해서도 편향과 왜곡을 보이는지는 잘 모른다 3)신문이 속이는 것을 인식한다 해도 개별 기사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장난’치는지는 모른다 4)신문이 속이는 이유와 구조적 동인을 잘 모른다.

신문이 속이면 그 사회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기 쉽습니다. 거짓된 정보와 잘못된 정보가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거나 오도하기 때문입니다. 판단의 기초는 정확한 팩트(fact), 즉 사실관계이어야 하는데 이 팩트 자체가 왜곡되면 올바른 판단과 의사결정은 기대하기 힘들어지겠지요. 예를 들어, 저명한 국제경제학자인 Q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Q가 한 학술대회에서 A라는 내용의 주장을 했다고 합시다. 지면 제한이 있는 신문의 경우 A라는 내용을 축약해서 보도하기 마련입니다. 이 축약된 내용을 A1이라고 합시다. 여기에서 그날 행사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Q가 주장한 A라는 내용을 생생하게 접한 뒤 그의 주장을 해석하거나 판단하게 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사장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대신 신문 등 뉴스매체가 전하는 A1의 내용을 접하게 되지요. 즉, 판단의 기초가 A가 아닌 A1이 되는 거지요.

축약은 어느 정도는 왜곡을 부르게 마련이지요. 신문 지면의 제한을 생각할 때 A1이 A의 핵심을 잘 담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니지요. 하지만 A1이 A의 핵심 내용을 잘못 전달하거나 왜곡하거나 엉뚱한 내용을 전달한다면 이것은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을 오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봅시다. A주장의 핵심내용이 “한미 FTA 추진이 이론적으로는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여러 현실적 문제가 있으므로 면밀한 검토와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라고 합시다. 그런데 B기자는 이를 보도하면서 “Q는 ‘한미 FTA추진이 이론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정부의 한미 FTA추진 방침을 지지했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반면 C기자는 “Q는 ‘한미 FTA추진이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한미 FTA 시기상조론’을 펼쳤다”고 썼다고 합시다. Q라는 사람의 같은 주장을 놓고도 기자들의 취사선택에 따라 거의 상반되는 방향의 기사가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심지어 이럴 수도 있습니다. Q가 연설 도중 “미국이 다른 나라 경제의 피를 빨아먹는 드라큐라 같은 존재라고 비난하는 일부 시각도 있다”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인용합니다. Q가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기 전에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기 위해 한 말입니다. 그런데 Q가 인용한 선정적 표현에 사로잡힌 D기자는 이렇게 전합니다. “Q는 ‘미국이 다른 나라 경제의 피를 빨아먹는 드라큐라 같은 존재’라며 정부의 한미 FTA 추진에 강력히 반대했다”.앞의 두 기자가 Q 주장의 일부만을 따서 아전인수격으로 기사를 작성했다면, D기자는 아예 Q의 취지와는 전혀 상관 없는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말을 전하는 짧은 한 문장에서도 엄청난 사실 왜곡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왜곡은 단순히 개별 기자들의 ‘취향’ 때문에만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같은 왜곡을 조장하는 구조적 환경과 왜곡된 취재 시스템이 근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신문이라면 어떨까요. 최소한 Q의 주장 자체는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기본입니다. 그런 뒤 칼럼이나 사설 등을 통해 Q의 주장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신문사의 시각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 신문사가 진보든, 보수든 적어도 사실 보도만큼은 정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신문들은 이 저널리즘의 ABC조차 어길 때가 허다합니다. 특정인의 발언조차도 자사의 입장에 유리하게 왜곡해서 전달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한미 FTA 추진을 지지하는 신문사는 B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한미 FTA 추진에 소극적이거나 반대한다면 C,D처럼 비트는 거지요. 한국의 신문들은 이렇게 기본적인 사실부터 왜곡하면서도 신문의 색깔을 내세우면서 합리화합니다. 특히 이 같은 왜곡보도는 오히려 한국의 주류신문이라는 ‘조중동’이 주도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들 신문을 ‘보수신문’ 등으로 부르는 것은 언론으로서 이들의 과오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단지 왜곡보도를 서슴지 않는 저질 기득권신문들일 뿐입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신문은 왜 속이는 걸까요. 이걸 알려면 한국 현대사에서 신문산업이 정치권력 및 자본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20년 조선, 동아의 출발 이후 한국 일간신문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제 몫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80년대 이후 군부 독재정권 시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전두환 정권 이전에도 한국의 신문들은 국가의 비호 아래 국가시책에 부합하여 반공 수구언론으로서 성장했습니다. 8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을 추방하고 언론통폐합을 추진합니다. 이렇게 생겨난 것은 ‘권력의 시녀’로서 언론입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포기한 채 정부의 확성기 역할을 한 것이지요. 대신 언론통폐합에서 살아남은 언론은 담합상태에서 안정적인 이윤을 보장받고 일정한 권력으로 자리잡습니다. 이러다 보니 80년대 일부 언론사는 100대 기업에 들어갈 정도로 급성장했습니다. 당시 급성장한 신문의 대표격이 바로 조선일보입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항쟁의 결과 이 같은 담합구조는 서서히 깨지기 시작합니다. 88년 언론자유화 조치 이후 한겨레신문 등 언론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91년에는 한국일보가 조간과 석간을 두 번 찍어내는 체제를 가동해 신문경쟁에 불을 지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제 ‘사상의 자유시장’이 드디어 한국에도 구현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걸기도 했습니다. 당시 신문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를 필두로 민주화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최고의 영향력을 자랑하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이후 신문의 변화 모습은 독립적이면서도 책임 있는 자유 언론의 길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시절 언론에 재갈을 물렸던 정치권력의 자리에 자본권력이 들어섭니다. 이 같은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91년 김중배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의 발언입니다. “언론은 이제 권력과의 싸움에서보다 원천적 제약 세력인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가 당시 사주이던 김병관 사장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며 던진 말입니다.

뒤돌아보면 그의 발언은 다가올, 언론으로서 한국 신문의 위기를 계시한 예언자적 발언이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시장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신문은 자본의 압력에 더욱 강하게 노출됩니다. 독재정권 시절 언론사주들은 담합체제 아래에서 손쉽게 돈벌이를 하는 동시에 권력에 아부해 스스로 권력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체제에서 신문사주들은 이제 광고 유치를 위해 사회적 공기로서보다는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한편으로는 민주화의 진전으로 권력의 재갈에서 자유로워진 재벌기업들은 광고를 통해 신문 지면에 영향을 미치고자 합니다. 심지어 일부 재벌은 직접 대규모 자본을 들여 신문을 직접 지배하려는 의도를 드러냅니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그룹의 사실상 중앙일보 지배입니다. 특히 이 같은 삼성그룹의 중앙일보 지배는 신문시장에서 95년 이후 지속된 중앙일보의 물량공세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중앙일보는 95년 4월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한 뒤 조선일보와 증면 경쟁을 벌입니다. 또 구독자 유치를 위해 각종 경품과 무가지를 살포하며 신문시장을 혼탁과열시장으로 몰아넣습니다. 물론 중앙일보가 이렇게 물량 경쟁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삼성의 자본력 때문입니다. 삼성은 중앙일보에 광고단가를 높여주는 등의 방식으로 중앙일보에 직간접적인 자금 지원을 해 신문시장의 판도를 뒤흔듭니다. 이후 중앙일보는 조선, 동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3대 메이저 신문으로 자리잡아 삼성의 의도는 일단 성공합니다. 삼성에 이어 현대는 문화일보를 창간하고, 한화는 경향신문을 인수합니다. 한마디로 ‘재벌의 언론시장 공습’이 잇따랐습니다. (이후 재벌의 언론 직접 지배에 대한 비판여론과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불거진 재벌기업들의 경영 악화로 현대와 한화 등이 이후 신문경영에서 다시 손을 뗍니다.)

외환위기는 신문사들이 재벌기업에 더욱 목을 매다는 계기가 됐습니다. 경제위기와 함께 거품성장을 해온 신문사들이 생존위기에 내몰리면서 사활을 건 광고 유치에 나섭니다. 한편으로는 일부 신문사들은 재벌 계열 금융사들의 특혜성 지원으로 급한 불을 끄기도 합니다. 갈수록 대기업을 비롯한 광고주들에게 비판성 기사를 쓰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변해간 것이지요. 이후 오마이뉴스 등 온라인 뉴스매체와 무가지의 등장, 인터넷 뉴스 포털의 ‘백화점식 뉴스 서비스’의 시작으로 신문산업의 위기는 더욱 가중됩니다.

그럼 이 같은 시장구조가 왜 현재 신문들의 저질 왜곡보도를 조장하게 될까요. 앞에서 보았듯이 신문의 자유로운 보도를 왜곡하는 구조는 민주화를 전후로 해서 크게 달라집니다. 민주화 이전에 신문들은 권력에 굴종하는 대신 담합에 의한 이윤을 보장받았기에 재벌기업에는 강했습니다. 특히 각종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재벌기업들은 약점이 많았기에 신문들의 부풀려진 광고단가에도 군말없이 광고를 집행했습니다. 즉, 신문은 권력에 약한 반면 재벌기업에는 강한 구도였습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정반대 상황이 전개됩니다. 민주화와 언론 자유의 보장으로 신문은 권력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제한적으로 비판합니다. 이제는 만만한 게 정부권력이 됐습니다. 반면 광고주로서 기업에는 한없이 약한 존재가 돼버렸습니다. 결국 신문은 이제 재벌에는 약하고 정치권력에는 강한 존재가 됐습니다. 신문에서 재벌기업에 우호적인 기사는 양산되는 반면 비판기사를 찾아보기 힘든 대신 정치권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정치권에는 상당히 강한 톤의 비판기사가 넘쳐나는 주된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국 신문들의, 특히 기득권신문인 조중동이 왜 일정한 편향을 가지고 왜곡보도를 지속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현재 한국 신문시장의 구조를 다음 편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겠습니다.

2008년 12월 15일 월요일

멋진 경찰청장

'촛불 진압' 어청수,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 대상'에 선정 - 오마이뉴스
<한국일보>-전문기자클럽 대상 선정... 27일 세종문화회관 시상식

2008.11.26 16:19



[기사보강 : 26일 오후 5시 15분]

지난 5월부터 이어진 촛불집회를 강경진압하고, '유모차 부대'를 무리하게 수사해 비난을 받아 온 어청수 경찰청장이 <한국일보>가 주는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 행정기관부문 대상에 뽑혔다. 현직 경찰청장이 언론사가 주는 상을 수상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26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어 청장은 한국전문기자클럽 기자들의 추천을 받아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 후보에 올랐고, 심사위원회를 거쳐 대상에 선정됐다.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 대상' 심사위원회 위원장은 박실 전 국회의원이 맡고 있다.

<한국일보>는 이 상에 대해 "제조·금융·에너지·공공행정 및 단체 등 각 분야별로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도 도전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CEO를 선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시상식은 27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다. 수상자는 어청수 청장 외에도 남유진 구미시장 등 시군구 자치단체장 18명, 최문기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김종희 대전광역시도시철도공사 사장, 홍성주 전북은행장 등이다.
한국전문기자클럽의 이아무개 국장은 "한 가지만 잘한 일이 있어도 상을 받을 수 있고, 수상자의 인생 전체를 놓고 평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어 청장 수상은 지휘자로서 시국 안정에 기여한 면이 있고, 전반적으로 (촛불 시위를) 큰 대과없이 마무리한 것이 평가됐다"고 밝혔다.

그는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는 보도 각도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국장은 "이번 평가에는 심사위원 6명과 위원장 등 모두 7명이 참여했다"며 "이 가운데 외신 기자는 2명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 외신기자들은 한국에서 활동중인데, 널리 알려진 그런 언론사 소속은 아니다"고 전했다.

한국전문기자클럽은 한국일보 공채 26기 출신인 성락서씨가 회장으로 있는 단체로 올 7월 만들어졌다. 상임고문인 임덕규씨는 현재 월간 <디플로머시> 회장으로도 있다.

원래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는 지난해 한겨레신문사 계열인 <이코노미21>에서 주관했다. 그러나 올해는 한국일보가 타이틀을 인수한 뒤 처음 시상식을 연다. 즉 타이틀만 같을 뿐 실제 수상자 선정이나 진행과정으로 볼 때 지난해와는 전혀 별개의 상이다.

시민단체 "상식 없는 세상... 상 주고받는 게 부끄럽지 않나"

촛불집회 이후 국민들의 비판을 받아 온 어청수 청장에게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 대상'을 시상하는게 적절한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광우병 대책회의 등 시민단체는 어 청장의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 대상' 수상에 반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학영 YMCA 사무총장은 "촛불의 염원을 강경진압한 어청수 청장에게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상을 준다니 상식이 없는 세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직 경찰청장이 직무 중에 한 일을 가지고 시상한다는데, 언론은 권력에 공평무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국일보>를 비판했다.

촛불 시국 미사를 계속하고 있는 김인국 신부도 "상을 주는 사람들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끄러운 일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 신부는 "국민들이 힘이 없어 촛불 폭력진압을 가만 보고 있지만 마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이런 상을 준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덧붙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19487